[중앙 칼럼] 성큼 다가온 ‘초연결 사회’
#세계 최대 가전 행사인 2023 CES가 막을 내렸다. 올해 행사의 특징은 ‘연결’이었다고 업계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특히 기술의 공통분모가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런 평가는 너무나 당연하다. 테크놀로지의 핵심은 결국 인간의 편리성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편리하기 위해서는 기술이 접목되어야 하고 더 많은 기술이 융합할수록 편리함과 더 가까워지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어떻게 하면 지금 존재하는 기술이나 제품보다 조금이라도 더 인간이 편리하게 집이나 일터에서 지내게 할 수 있을까가 신기술 개발의 핵심이 될 수밖에 없다. 여기서 편리성과 효용성은 지극히 당연하다. 게다가 여러 기술의 공통분모가 사람이라는 것은 사족이다. 오히려 연결을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기술을 어떻게 한 단계 더 발전시키거나 다른 기술과 결합했는지를 홍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어쨌든 모빌리티 부문은 점점 인간과 교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메타버스는 각자의 경험을 공유하는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다. 또 디지털 헬스는 건강한 삶에 대한 접근성을 키우는 혁신을 이뤘다. (이런 평가는 제이미 캐플런 미국 소비자기술협회(CTA) 이벤트 커뮤니케이션 부문 부사장이 언론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다.) 모빌리티 부문은 캐플런의 지적처럼 올해 행사에 300개가 넘는 자동차 브랜드가 참여할 정도로 확대됐다. 그만큼 자동차는 이제 단순한 이동 수단이나 도구가 아니다. 모든 기술의 집약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진화하고 있다. 그러면서 인간의 삶이 녹아드는 공간, 인간과 자동차가 하나로 섞이며 변신하는 느낌이다. 완전한 자율주행이 언제 실현돼 상용화될런지 현재로써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지금 모든 관련 기술은 그쪽을 향해 끊임없는 개발에 나서고 있다. 결국 얼마나 빨리 현실화할 수 있느냐, 즉 시간문제일 뿐이다. 자동차의 완전 자율주행이 가능해진다는 것은 ‘초연결’ 사회의 신인류가 탄생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는 대변혁이 될 것이다. #‘초연결’이라는 용어는 10여년 전부터 심심찮게 등장했다. 2019년에는 다보스포럼, MWC(세계모바일전회), CES(세계가전박람회)에서 이 시대 최대 화두로 ‘초연결’을 지목하기도 했다. 초연결은 사람과 사람은 물론이고 사람과 사물, 사물과 사물이 모두 네트워크로 연결되는 것을 의미한다. 단순한 물리적 연결 외에도 모든 서비스의 연결도 의미한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인간의 편리함과 효용성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초연결이 마냥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인간이 고통을 겪을 수도 있다. 시간을 많이 절약하고 육체적으로 편한 대신 초연결 네트워크 중 하나라도 어긋난다면 모든 일상이 한순간에 정지될 수 있다. 편리하다는 것은 양면성을 항상 내포한다. 내가 다 조정하고 이용하는 것 같지만 그만큼 의존성이 강해진다는 의미도 담는다. 어떤 이는 “초연결 사회에서 인간은 자율주행 차나 집안의 냉장고처럼 단말에 불과하다”고 단정하기도 한다. 평소에는 아무런 문제 없이 잘 작동하지만 작은 문제라도 발생하면 단말은 거의 무용지물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건전지가 다 소모돼 전원이 꺼진 휴대전화기나 태블릿처럼 말이다. 초연결 사회는 또 다른 부익부 빈익빈을 예상할 수 있다. 초연결이 되기 위해서는 기술력이 있어야 하고 기술력은 결국 돈이다. 돈이 있는 사람은 기술력 있는 제품을 구입해 초연결 생활을 누리겠지만 돈이 없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기술과 멀어지는 것이다. 이는 기회의 박탈과도 연결된다. 근대 철학의 아버지인 르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개념도 이제는 바뀔 때가 됐다. 초연결시대에는 “모든 것은 생각한다.(Internet of Things)”라고. 김병일 / 뉴스랩 에디터중앙 칼럼 사회 신기술 개발 관련 기술 완전 자율주행